1월 25일 Receiving forgiveness

There are two sides to forgiveness: giving and receiving. Although at first sight giving seems to be harder, it often appears that we are not able to offer forgiveness to others because we have not been able fully to receive it. Only as people who have accepted forgiveness can we find the inner freedom to give it. Why is receiving forgiveness so difficult? It is very hard to say, “Without your forgiveness I am still bound to what happened between us. Only you can set me free.” That requires not only a confession that we have hurt somebody but also the humility to acknowledge our dependency on others. Only when we can receive forgiveness can we give it.

용서에는 두가지 얼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용서를 하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용서를 받는것이지요. 언뜻 생각하기에 용서를 하는것이 더 힘든것 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 힘든 이유가, 사실은 온전히 용서를 받을수 없었기 때문인것을 종종 발견하곤 합니다. 오직 용서를 받았던 사람들 만이 용서를 할 수 있는 내면의 자유를 얻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용서를 받는것이 이토록 힘든것일까요? “너의 용서가 없이는, 나는 우리들 사이에 일어난 그 일에 얽매여 있게돼. 오직 너만이 나를 자유케 할수 있어” 라고 이야기 하는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고백을 요구 할 뿐더러, 우리가 다른사람에게 의지하고 있다는것을 보여주는 겸손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용서를 받을때 만이 다른 사람을 용서할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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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장에 무자비한 종의 비유가 나옵니다.
어느 왕이 일만달란트(6천만 데나리온)의 빚을 진 종을 용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종이 빚을 탕감을 받고 나오는데, 자기에게 백데나리온의 빚을 진 동료에게 빚을 갚으라고 호통을 치고 그 동료를 감옥에 가두기 까지 합니다. 자신이 방금 탕감 받은 금액의 0.00017% 의 금액을 갖고 왕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행동을 한 그 종은 자비를 베풀지않았기 때문에 왕에게 벌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 라고 말씀 하십니다. (마태오 18:23-35)

이 비유는 곧잘, 값으로 따질수 없는 죄를 용서해 주신 하느님도 계시는데 우리는 형제들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할 때 사용되는 비유입니다.
그것이 틀린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주께서 강조하고 싶은신것은 “용서받는 능력과 용서하는 능력은 곧 하나이므로, 한쪽 문을 열면 다른 한쪽 문이 열리는것이며, 한쪽 문을 닫으면 다른 한쪽 문도 닫히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는 것입니다. ( Wright, N.T Evil and the Justice of God, ‘용서라는 고통’ 에서 재인용)

그런데,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것은,
용서를 하는것도.. 용서를 받는것도 아니고,
용서를 구하는것인것 같아 마음이 참 무겁습니다.

주님께 용서를 구하는것은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는데,
정작 내가 상처를 준 사람에게 내 입을 열고, 목소리를 내어서 용서를 해달라고 구하는것은 정말 정말 어렵습니다.

왜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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