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7일 Healing our hearts through forgiveness

 

How can we forgive those who do not want to be forgiven? Our deepest desire is that the forgiveness we offer will be received. This mutuality between giving and receiving is what creates peace and harmony. But if our condition for giving forgiveness is that it will be received, we seldom will forgive! Forgiving the other is first and foremost an inner movement. It is an act that removes anger, bitterness, and the desire for revenge from our hearts and helps us to reclaim our human dignity. We cannot force those we want to forgive into accepting our forgiveness. They might not be able or willing do so. They may not even know or feel that they have wounded us.

The only people we can really change are ourselves. Forgiving others is first and foremost healing our own hearts.

용서 받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할수 있을까요?
우리 마음 깊이 바라는 것은 우리가 하는 용서가 받아들여 지는것 입니다. 이 주고 받는것 사이에서 나오는 공통분모가 평화와 조화를 만들지요. 하지만 우리가 하는 용서가 받아들여 지는 조건하에서만 용서를 한다면, 우리는 절대 용서를 할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 마음이 움직여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으로 부터 분노, 비통함 그리고 복수의 욕구를 없애는 일이고 또 인간으로써의 존엄을 되찾는 노력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용서하고 자 하는 이들이 우리의 용서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할수 없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할수 없을지도 또는 그것을 원치 않을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어쩌면 우리에게 상처를 주었는지 조차도 모를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꿀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우리 자신입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우리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져 치유해 주는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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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을 시작하면서 문장이 이상함을 발견했습니다.
도대체 어느 누가 용서를 받는것을 원치 않는다 말인가? 도대체 나웬 신부님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것인가?
혹시, 용서할수 없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할수 있을것인가? 를 이야기하시는것 아닌가?

그러다가, 차츰 내용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한민족에 행한 그 수많은 죄악들에 대해 뉘우치지 않는 일본. 그러나 용서할수 있을까요?
어릴적 부모님께 받았던 많은 상처들. 어쩌면 부모님들은 그것을 모르고 계실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부모님을 용서할수 있을까요?

그렇게 쉽게 답할수 있는 질문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결국 이 질문은, 용서를 하기 위함이 아니라, ‘용서를 구하는것’을 받기 위함이 마음 깊숙한 곳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나의 상처를 봐달라는 아우성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정 우리가 해보아야 하는 질문은 이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에게 상처를 주었던 대상이 우리의 용서를 받아들이고, 우리에게 상처를 주었음을 인지하고, 용서를 구하면… 우리의 마음이 평안해 지고 화해로 나갈수 있을까?

그럴까요? 그렇게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물론, 이 질문에도 쉽게 답할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상처는 과거의 일이고, 지워질수 없는, 돌이킬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계속 또는 가끔이라도 되살아 나는 흉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덮어 두고, 없었던 일로 하는것으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용서를 한다는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설교시간에 용서를 하십시요.. 라고 말씀을 들었다고 용서가 되는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자식은 절대 용서를 못하겠어..” 라고 생각한다고, 훌륭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이 되는것은 아닐것입니다. 용서는 정말로 쉽지 않은것이니까요.
누구한테나 다 힘듭니다. 진정한 용서를 쉽게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운동 하루 했다고 해서, 10파운드가 빠지는것이 아닙니다.
운동 관련 책을 읽었다고 해서 운동이 쉬어 지는것도 아닙니다.

조금씩, 우리가 바꿀수 있는것을 바꾸어 나가면 됩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상처가 우리를 조정(control)하는 것에서
우리가 그 상처를 조정하는것으로 바꾸어 나가면 됩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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