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4일 Waiting to be lifted up with Christ

Waiting for Christ’s second coming and waiting for the resurrection are one and the same. The second coming is the coming of the risen Christ, raising our mortal bodies with him in the glory of God. Jesus’ resurrection and ours are central to our faith. Our resurrection is as intimately related to the resurrection of Jesus as our belovedness is related to the belovedness of Jesus. Paul is very adamant on this point. He says: “If there is no resurrection of the dead, then Christ cannot have been raised either, and if Christ has not been raised, then our preaching is without substance, and so is your faith” (1 Corinthians 15:13-14).

Indeed, our waiting is for the risen Christ to lift us up with him in the eternal life with God. It is from the perspective of Jesus’ resurrection and our own that his life and ours derive their full significance. “If our hope in Christ has been for this life only,” Paul says, “we are of all people the most pitiable” (1 Corinthians 15:18). We don’t need to be pitied, because as followers of Jesus we can look far beyond the limits of our short life on earth and trust that nothing we are living now in our body will go to waste.

그리스도의 다시오심을 기다리는 것과, 부활을 기다리는것은 하나이며 같은것입니다. 다시오심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오심이고, 하느님의 영광 가운데에서 우리의 죽은 육신을 그와 함께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은 우리 믿음의 핵심입니다. 우리의 부활은 예수님의 부활과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그것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는것이 예수님께서 사랑 받고 계시다는것과 연결되어 있는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이 점에 대해 확고부동하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 만일 죽은자가 부활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다시 살아나셨을리가 없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 나시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전한 것도 헛된 것이요 여러분의 믿음도 헛된 것일 수 밖에 없을것입니다.”(고린토 전서 15:13-14)
진실로 우리의 기다림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느님과의 영원한 삶으로 우리를 들어 올려주시는것 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우리 자신의 부활로 부터 예수님의 삶과 우리의 삶의 중요성을 추론할수 있게 합니다. 바울이 또 말하기를 “ 만일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이 세상에만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누구 보다도 가장 가련한 사람일 것입니다” (고린토 전서 15:19)
우리는 가련해질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따르는 제자로써 우리는 우리의 이곳에서의 짧은 삶의 한계 너머를 바라 볼 수 있으며 또 이 육식으로 살고 있는 지금이 결코 헛된것이 아니라는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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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스와 인디언스의 월드시리즈 7차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소파에 앉아서 그 경기를 지켜 보고 있습니다.
초반에 컵스가 점수를 내고 분위기를 이끌어 갑니다.
잘 던지고 있던 투수를 컵스 감독이 교체를 합니다.
점수를 허망하게 줍니다.
무리를 했던 마무리 투수를 일찍 등판시킵니다.
또 점수를 허망하게 주고, 동점을 만들어 버립니다.
인디언스 팬들을 열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경기를 처음부터 보고 있던 저는 덤덤하게 계속 시청을 하고 있습니다. 가끔 맥주를 홀짝 거리면서요.
옆에서 밍키는 쿨쿨 코를 골며 자고 있습니다.
비가 와서 경기가 지연되었습니다.
안주거리가 더 없나 냉장고를 뒤집니다.
연장전에서 컵스가 점수를 냅니다.
그 다음회에서 인디언스가 또 점수를 내고 1점차가 됩니다.
그러나 저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를 주지 않고 계속 화면을 응시합니다.
결국 컵스가 마지막 아웃을 잡아내고 우승을 합니다. 모두들 마운드로 뛰어 나가 환호성을 지르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저는 다른 채널에서 무엇을 하는지 살펴봅니다.

제가 강심장이거나.. 아니면 컵스에 대한 믿음이 강해서 이렇게 경기를 덤덤하게 볼수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쉽게 흥분하는 저에게는 상상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상황이 벌어질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제가 재방송을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경기 내용을.. 그리고 결과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부활이 그렇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도 그러해야 합니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경기를 보는 사람처럼.
이미 죽음을 이기신 주님과 한밥상을 나누고 한 몸 된 사람이기에
가끔은 안개속을 걷는것 같고, 너무 힘들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우리의 삶자리의 마지막 통로 너머를 잘 알고 있기에.
평온할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1&v=HOp8w2PgH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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