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5일 The hidden resurrection

The resurrection of Jesus was a hidden event. Jesus didn’t rise from the grave to baffle his opponents, to make a victory statement, or to prove to those who crucified him that he was right after all. Jesus rose as a sign to those who had loved him and followed him that God’s divine love is stronger than death. To the women and men who had committed themselves to him, he revealed that his mission had been fulfilled. To those who shared in his ministry, he gave the sacred task to call all people into the new life with him.

The world didn’t take notice. Only those whom he called by name, with whom he broke bread, and to whom he spoke words of peace were aware of what happened. Still, it was this hidden event that freed humanity from the shackles of death.

예수님의 부활은 숨겨진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반대했던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기위해서, 승리의 선언을 하기 위해서 또는 그를 십자가에 못 밖았던 사람들에게 주께서 옳으셨다는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무덤에서 부활 하신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하고 따랐던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신성한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다는것을 보여주는 증표로써 부활하신것입니다. 그에게 모든것을 바쳤던 사람들에게 그의 사명이 완성되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의 사역가운데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모든 사람들을 주와 함께하는 새로운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성스러운 사명을 주신것입니다.
세상은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오직 주께서 이름 부르신자들, 그와 함께 빵을 떼던 사람들, 그리고 평화의 말씀을 선포했던 사람들만이 무엇이 일어났는지 알았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굴레에서 인류를 해방시킨것은 이 감추어진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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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서를 보면
주께서 처음으로 입을 여시고 하신 말씀은..
“너희가 바라는것이 무엇이냐?” 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을 받은 두명의 세례요한의 제자들(요한과 안드레)이 한 말은
“선생님께서 묵고 계시는 데가 어딘지 알고 싶습니다” 였습니다. (요한 1:38)

이것은 마가복음에 나와있는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과는 사뭇 다릅니다.
마가복음에서 주께서 처음 하셨던 말씀은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였고
바로 이어서 첫번째 제자들(베드로와 안드레)에게는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요한복음이 예수님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던 훠얼씬 후대 신자들을 대상으로 씌여졌기 때문일것입니다. 그렇다면 요한복음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주님의 첫번째 말씀 장면은 2000년이라는 시간의 차이를 두고 있는 우리에게 더 다가오는 장면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셔서 “이 복음을 믿어라” 도 아니고 “나를 따르라!” 도 아닌..

“너희가 바라는것이 무엇이냐?” 라고 하시는 주님.
그리고 그 질문에 ‘ 이러 이러한것을 원합니다. 이러 이러한것을 가르쳐 주십시요’ 가 아닌 ‘어디에 머무르고 계십니까?’ 를 되묻는 첫 제자들.

수억명의 사람들 앞에서 웅장하게 선포되는 말이 아니라,
수억명의 사람들 중 오직 주님과 나와의 친밀한 관계를 시작하는 대화..
“바라는것이 무엇이냐” “어디에 계십니까?”

또 부활후 엠마오로 걸어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부활하신 주님의 첫 말씀
“길을 걸으면서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고 있느냐?” (루가 24:17) 도 비슷한 분위기 입니다.

어쩌면 이 한사람 한사람간의 ‘관계’ 회복이,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던 그 첫날부터 부활의 장면까지 영웅적 이지도, 떠들석 하지도 않았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예레미야, 요즘 어떻게 사니?”
“예레미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https://youtu.be/hdInoF6-PB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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