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6일 Wounds becoming signs of glory

The resurrection of Jesus is the basis of our faith in the resurrection of our bodies. Often we hear the suggestion that our bodies are the prisons of our souls and that the spiritual life is the way out of these prisons. But by our faith in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we proclaim that the spiritual life and the life in the body cannot be separated. Our bodies, as Paul says, are temples of the Holy Spirit (see 1 Corinthians 6:19) and, therefore, sacred.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means that what we have lived in the body will not go to waste but will be lifted in our eternal life with God. As Christ bears the marks of his suffering in his risen body, our bodies in the resurrection will bear the marks of our suffering. Our wounds will become signs of glory in the resurrection.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몸의 부활을 믿는 믿음의 근거가 됩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 영혼의 감옥이며 영적인 삶이라는것은 이 감옥 밖으로 나오는것을 뜻한다고 종종 듣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 몸의 부활을 근거로 해서, 영적인 삶과 우리 몸의 삶은 결코 분리될수 없음을 주장할수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사도 바울이 말한대로 성령이 머무는 성전입니다. (고린도 전서 6:19) 그렇기 때문에 성스러운것입니다. 우리 몸의 부활은 우리가 살고 있던 이 몸이 버려지지 않고 하느님과 함께 하는 영생의 삶으로 들려짐을 뜻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부활하신 몸에 상처를 그대로 지니고 계셨었듯이, 우리의 몸도 부활시 우리의 고통을 그대로 지닐것입니다. 우리의 상처는 부활의 때에 영광의 상징이 될것입니다.

—————-

사도바울이 우리 몸은 하느님의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라고 이야기하는 고린도 전서 6장 전체를 살펴보면,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이고(15절) 하느님께서 값을 치르고 우리의 몸을 사셨고(20절)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몸은 우리것이 아니다(19절) 라고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수주간동안 이 나웬 신부님의 묵상을 통해서 생각해 보았던 성찬의 신비를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주님과 밥상을 나눈 우리는, 주님과 한 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좋은것은 주님도 좋은것이고
우리가 아픈것도 역시 주님께서도 아픈것입니다.
밥을 먹어도 주님께서 밥을 드시는 것이고
운동을 해도 주님께서 운동을 하시는 것입니다.
동시에,
도둑질을 하면 주님께서 도둑질을 하는 것이고
사도바울이 강조했던것 처럼, 음행을 하면 주님이 음행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께서 밥을 먹어라, 운동을 해라, 도둑질을 해라 그리고 음행을 저질러라 라고 명령을 하는것은 아닙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선택을 하는것이지요. 다만, 그 행동들을 하는 몸이, 주님께서 피값을 치르고 사신 주님의 것 그리고 성찬을 통해서 우리 몸과 하나된 주님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주께서 원하시지 않는 행동들을 할 때면, 양심이 발동을 하고 ‘몸’에 변화가 옵니다. 심장이 가삐 뛰거나, 불안해 지거나, 죄책감이 들거나 말이지요. 그럴때는 멈추십시요. 주께서 하늘에서 명령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옆에서 조언을 해주시는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안에서 이야기 하고 계시는것 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일이 발생하였을 경우,
일단은 멈추십시요. 그리고 곰곰히 생각을 해보시고 우리와 하나된 주님을 생각해 보십시요.
그것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공동체의 다른 성인을 찾아가십시요. 그리하면 다른 성인 안에 있는 그리스도가 도움을 줄것입니다.

0 Comments

Add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