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8일 Care, the source of all Cure

Care is something other than cure. Cure means “change.” A doctor, a lawyer, a minister, a social worker-they all want to use their professional skills to bring about changes in people’s lives. They get paid for whatever kind of cure they can bring about. But cure, desirable as it may be, can easily become violent, manipulative, and even destructive if it does not grow out of care. Care is being with, crying out with, suffering with, feeling with. Care is compassion. It is claiming the truth that the other person is my brother or sister, human, mortal, vulnerable, like I am.

When care is our first concern, cure can be received as a gift. Often we are not able to cure, but we are always able to care. To care is to be human.

‘보살핌’(Care)은 ‘고침’(Cure)과는 다른것입니다. ‘고침’ 이라는 것은 ‘바꾸다’ 라는 뜻이지요. 의사, 변호사, 성직자, 사회복지사.. 이들 모두 그들의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을 사용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바꾸려고 합니다. 그들이 가져다주는 ‘고침’ 으로 인해서 그들은 보수를 받지요. 하지만, ‘고침’은, 그것이 의도한 대로 이루어 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보살핌’에서 오지 않을경우 아주 쉽게 폭력적이고, 조작적이며 심지어 파괴적이 될수도 있습니다.

‘보살핌’ 이란 함께 하는것을 뜻합니다. 같이 울어주는 것을 뜻하고, 함께 고통을 받고 같이 느끼는것을 의미합니다. ‘보살핌’은 긍휼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나의 형제,자매요, 인간이며, 죽을수 밖에 없는 존재이고, 상처받기 쉬운…. 바로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보살핌’을 먼저 생각할때, ‘고침’을 선물로 받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종종 그 ‘고침’이 이루어 지지 않을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보살필수는 있습니다. 보살핀다는것은 인간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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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 의사선생님은 어릴적부터 자라온 모든 과정을 다 지켜본 분 이었습니다. 질병과 관련된 일 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일들까지 다 알고 있었던 마을 공동체의 일원이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진료시 어떠 어떠한 가족력을 지니고 있는지, 어떠 어떠한 과거의 치료나 질병들이 있었는지 굳이 따로 이야기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요즈음은 이런 의사선생님을 거의 볼수 없습니다.

주치의라는 제도는 남아 있지만, 우선 상태를 보고 거기에 맞게 전문의에게 보내주는 역할을 하는것이 주된 역할이 되어버린지 오래입니다.

전문의들도, 환자를 보기 보다는, 검사에서 나온 숫자들이나 영상들을 보기에 더 바쁩니다.

Cure 는 있을지 몰라도, Care 까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나웬신부님께서 철자 하나가 다른 Cure 와 Care 를 갖고 글을 쓰셨습니다. (이런류의 글은 번역을 하면 그 맛을 내기가 정말로 어렵지요) 정말로 대단하신것 같아요.

그런데, 나웬 신부님께서 단어의 뿌리는 찾아 보시지 않으셨나 봅니다.

Cure 의 뿌리는 라틴어 Curare 에서 온것으로 ‘보살피다’ 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어쩌면 cure 가 care 에서 와야 한다는것을 단어 자체가 말해주고 있는것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Care 는 고대 영어인 Caru , Carian 즉 ‘슬퍼하다’ 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결국 묵상의 끝마무리인 Care 를 하면 Cure 가 온다는것은 얼추 맞는 말씀이 되기는 합니다. 슬퍼하는것으로 시작한 마음이 보살피는것이 되는것 이니까요.

영어단어 이야기가 나온김에 단어 하나 더 알아 볼까요?

Cursory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영한사전에 보면 ‘대충하는, 피상적인’ 이라고 나와 있고, 영어사전에서는 ‘무엇인가를 빠르게 끝내거나 만드는것’을 뜻하는 것으로, 더 정확한 번역으로는 ‘형식적인’ ‘수박겉핥기식’ 정도가 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단어를 처음 듣고, 배운 날이 2015년 6월 30일 이었습니다.

보름앞으로 다가온 법원출두를 앞두고 변호사와의 마지막 만남에서 들었던 문장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 서류가 다 통과 되었으니, 판사앞에서 하는건 cursory 한거야 “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일들을 겪으면서, 그것이 돌이킬수 없는 일이 되어 버리는 순간인데, 그래서 그 순간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버거운 무게로 짓누르는 순간인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형식적이고, 깃털만큼의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이… 저를 더 힘들게 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변호사님은, 맡겨진 일을 잘 해내셨고, 일은 순조롭게 끝났습니다.

그러나,

Cursory 라는 단어와 함께 Care 를 통한 Cure 의 필요가 시작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One Comment

  1. For further reflection…

    “He went to him and bandaged his wounds, pouring on oil and wine. Then he put the man on his own donkey, took him to an inn and took care of him.” – Luke 10: 34

    가까이 가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주고는 자기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서 간호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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