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9일 Persecuted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오 5:10)

9절에서 언급한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이 특색없고, 회색 플란넬 순응주의자여서 분란을 일으키는것을 두려워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가치가 종종 도전받는 이 세상에서 자주 ” 아니오” 라고 말할 수 있는 옳은 일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누가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는것에 회방을 놓나요?

그리스도여, 저에게 반대하는 폭풍이 다가올때, 꾸준히,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주의 일에 뿌리를 박고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저의 성장이 옳은일에 굳건히 서서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당신에게 신실할수 있게 하소서. 아멘

(회색 플란넬.. 이야기는 제가 생각하기에 1950년대의 소설과 영화 The Man in the Gray Flannel Suit 에서 처럼 “yes man” 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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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일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우리는 종종 그 옳은일의 대상이 사람에게 향해 있는것을 봅니다. 잘못된 일이 일어날때, 판사는 시비를 가려서 억울한 사람을 그리고 피해를 당한 사람을 대신해서 잘못한 사람에게 죄를 묻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정의가 실현이 되었다고 하지요.
1987년의 대한민국처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의 목숨같은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아니다” 라는 외침을 들려주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소리를 함께 높였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해야 할 “옳은 일”은 사람을 위한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위한것 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옳은 일”은 하느님으로 향한 감사와 그와의 지속적인 관계 하에서 나오는 행동입니다.

우리가 제정한 법이 옳고 그름을 가려서 그에 따라 일을 처리 했을때, 그것은 그 법 아래에 있는 공동체를 위함 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옳은 일”은 하느님을 기쁘게 해야 하는 정의입니다.
그것이 사람을 만족시키는 정의와 같을 수도 있지만, 다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나라 사람이고, 이 나라 법을 따라야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느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그래서 그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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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한국의 모 교회 목사님 처럼 “세상 사회 법 위에 도덕법 있고 도덕법 위에 영적 제사법이 있다” 라고 말하시며 마치 하느님의 법을 따르다가 박해를 받는 것 처럼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나머지 7개의 행복을 더불어 살펴보시길 권합니다.
왜냐하면, 이 팔복은.. 8개의 나누어진 복이 아니라, 하나의 복이기 때문입니다.
그 가장 큰 예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하셨고, 슬퍼하셨고, 온유하셨고,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르셨으며, 자비를 베푸시고 마음이 깨끗하시고 평화를 위하여 일하시며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으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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