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월 24일 Forgiveness, the cement of community life

Community is not possible without the willingness to forgive one another “seventy-seven times” (see Matthew 18:22). Forgiveness is the cement of community life. Forgiveness holds us together through good and bad times, and it allows us to grow in mutual love.

But what is there to forgive or to ask forgiveness for? As people who have hearts that long for perfect love, we have to forgive one another for not being able to give or receive that perfect love in our everyday lives. Our many needs constantly interfere with our desire to be there for the other unconditionally. Our love is always limited by spoken or unspoken conditions. What needs to be forgiven? We need to forgive one another for not being God!

다른 사람을 “ 일흔번의 일곱번까지 “ 용서해주는 의지가 없으면 공동체는 존속할수 없습니다. (마태오 18:22 참조). 용서는 공동체 삶의 접착제입니다. 용서는 우리들을, 좋은시절이나 그렇지 못한 시절 모두, 하나로 엮어줍니다. 그리고 하나된 사랑으로 성장하게 해주지요.
하지만 무엇을 용서하고 무엇을 위해 용서를 구해야 할까요? 완전한 사랑을 바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로서, 우리의 매일 매일 삶가운데 그 완전한 사랑을 주지도 또 받을수도 없었기 때문에 서로서로 용서해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많은 욕구들 때문에, 아무 조건없이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삶을 위한 일들이 계속 방해를 받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말할수 있는 또는 말할수 없는 조건들로 언제나 방해를 받습니다. 무엇을 용서받아야 하나요? 우리는 하느님처럼 행동하지 않은것을 서로서로 용서해야 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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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그리고 소설원작) ‘침묵’ 에서 ‘기치지로’라는 일본인이 있습니다.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나오는 핵심인물이지요.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인물의 중요성을 감지하고 있지 못하다가, 영화가 끝나고 수 일이 지났음에도 주인공 로드리게스 신부님보다 기치지로가 더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원래는 크리스천이었다가 온 가족은 주님을 부인하지 않아 순교를 당할때 혼자 마음을 돌려 살아난 인물입니다. 그리고 술꾼에다가.. 믿을만한 구석이 별로 없는 인물이지요.
물론 로드리게스 신부님을 일본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지만, 별로 눈길을 받지 않다가, 고해성사를 하는 과정을 거치며 다시 크리스천이 됩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서 다시 부인을 하고, 목숨을 연명하지요..
그러나 계속 신부님을 따라다니면서 다시 고해성사를 요구하고.. 그리고 돈을 받고 신부님의 위치를 고자질 하고.. 신부님이 감옥에 갇혔을때 또 찾아와 다시 고해성사를 하고.. 또 신앙을 부인해서 감옥에서 벗어나고.. 또 찾아오고..

영화 말미에서 정말로 억지로 대충 고해성사를 해주는 신부님의 맘이 이해가 갈 정도로 민폐 캐릭터입니다.

그런데…

그가 마음에 남습니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로드리게스 신부님이 되어서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어느덧 기치지로가 되어 있는 저를 봅니다.

그리고, 로드리게스 신부님이나 기치지로나 결국 다른 사람이 아님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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