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4일 Holding on to the Christ

Life is unpredictable. We can be happy one day and sad the next, healthy one day and sick the next, rich one day and poor the next, alive one day and dead the next. So who is there to hold on to? Who is there to feel secure with? Who is there to trust at all times?

Only Jesus, the Christ. He is our Lord, our shepherd, our rock, our stronghold, our refuge, our brother, our guide, and our friend. He came from God to be with us. He died for us, he was raised from the dead to open for us the way to God, and he is seated at God’s right hand to welcome us home. With Paul, we must be certain that “neither death nor life, nor angels, nor principalities, nothing already in existence and nothing still to come, nor any power, nor the heights nor the depths, nor any created thing whatever, will be able to come between us and the love of God, known to us in Christ Jesus our Lord” (Romans 8:38-39).

삶은 예측불허 합니다. 오늘은 행복했다가 내일은 불행하고, 오늘은 건강했다가 내일은 아플수 도 있습니다. 오늘은 부자였다가 내일 당장 가난뱅이가 될수도 있고, 오늘 숨쉬고 살아있다가 내일 죽을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의지하고 살수 있을까요? 누가 우리가 안전함을 느끼게 해줄 사람은 누군인가요? 누구를 언제나 의지할수 있을까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그는 우리의 주님이시고, 우리의 목자이시고, 우리의 반석이시며 우리의 성채이시고, 우리의 피난처이시고, 우리의 형제이시고, 우리의 안내자이시며 우리의 친구이십니다. 우리의 함께 하기 위해서 하느님으로 부터 오신 분입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우리에게 하느님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기 위해 죽음에서 부활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우편에 앉아 계셔서 우리를 환영해 주십니다.
사도 바울이 그러했던것 처럼 우리도 이것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죽음도 생명도 천사들도 권세의 천신들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능력의 천신들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의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타날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수 없습니다” (로마서 8:38-39)

—————

한글 성경도 그렇고, 영어 성경도 그렇고 거의 모든 버전에서 이 로마서 39장의 말씀을 “Separate”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묵상의 본문에서 나웬신분님께서 사용하신 성서에서는 “come between”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번역을 하면 같은 뜻입니다. 그런데
“나눌수 없다” “떼어 놓을수 없다” 라는 표현과 “어떤것도 둘의 사이에 들어올수 없다” 라는 표현은 느낌이 살짝 다릅니다.

생각해 보면, “떼어놓다, 나누다” 라는 단어가 존재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간에 무엇인가가 존재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나누어 지지 않으며, 또 붙어 있다고 이야기 할수 없지요.

그런데 엄밀히 말해서는 나웬신부님께서 인용하신 문구가 더 강력합니다.
왜냐하면 연결부분이 존재하고 일부분이 나뉘어 졌어도 그것이 ‘나누어 졌다” 또는 “떼어졌다” 라고 이야기 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피자를 칼로 자르다가 그 끝이 살짝 붙어 있으면, 엄밀히 말해서 완전히 분리되었다고 이야기 할 수 없듯이 말이지요.

하지만 어느 관계 사이에 그 어떤것도 존재 하지 않는다는것은 완전한, 일백프로 붙어 있는 굳건한 결합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의 온 몸이 공기로 완벽하게 감싸져 있는것과 같습니다. 잠을 잘때도, 샤워를 할때도, 밥을 먹을때도, 일을 할 때도, 티비를 시청할 때도…착한일을 할 때도, 나쁜일을 할 때도, 웃을 때도, 울고 있을 때도..

주님의 사랑은 우리 온 몸을 완전하게 감싸고 계십니다.

야훼여, 당신께서는 나를 환히 아십니다.
내가 앉아도 아시고 서 있어도 아십니다.
멀리 있어도 당신은 내 생각을 꿰뚫어 보시고,
걸어갈 때나 누웠을 때나 환히 아시고,
내 모든 행실을 당신은 매양 아십니다.
입을 벌리기도 전에
무슨 소리 할지, 야훼께서는 다 아십니다.
앞뒤를 막으시고,
당신의 손 내 위에 있사옵니다.
그 아심이 놀라워 내 힘 미치지 않고
그 높으심 아득하여 엄두도 아니 납니다.
당신 생각을 벗어나 어디로 가리이까?
당신 앞을 떠나 어디로 도망치리이까?
하늘에 올라가도 거기에 계시고
지하에 가서 자리깔고 누워도 거기에도 계시며,
새벽의 날개 붙잡고 동녘에 가도
바다 끝 서쪽으로 가서 자리를 잡아보아도
거기에서도 당신 손은 나를 인도하시고
그 오른손이 나를 꼭 붙드십니다.
어둠보고 이 몸 가려달라고 해보아도,
빛보고 밤이 되어 이 몸 감춰달라 해보아도
당신 앞에서는 어둠도 어둠이 아니고
밤도 대낮처럼 환합니다.
당신에게는 빛도 어둠도 구별이 없습니다.
당신은 오장육부를 만들어 주시고
어머니 뱃속에 나를 빚어주셨으니
내가 있다는 놀라움, 하신 일의 놀라움,
이 모든 신비들, 그저 당신께 감사합니다.
당신은 이 몸을 속속들이 다 아십니다.
은밀한 곳에서 내가 만들어질 때 깊은 땅 속에서 내가 꾸며질 때
뼈 마디마디 당신께 숨겨진것 하나도 없었습니다.
형상이 생기기 전부터 당신 눈은 보고 계셨으며
그 됨됨이를 모두 당신 책에 기록하셨고
나의 나날은 그 단 하루가 시작하기도 전에
하루하루가 기록되고 정해졌습니다.
하느님, 당신의 생각은 너무 깊어 미칠 길이 없고,
너무 많아 이루 다 헤아릴 길 없습니다.
세어보면 모래보다 많고
다 세었다 생각하면 또 있사옵니다.
<시편 139:1-18>

저는 외롭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끔,
그 사이에 무엇인가를 자꾸만 집어 넣으려는 저를 봅니다.

0 Comments

Add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