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5일 The task of Reconciliation

What is our task in this world as children of God and brothers and sisters of Jesus? Our task is reconciliation. Wherever we go we see divisions among people – in families, communities, cities, countries, and continents. All these divisions are tragic reflections of our separation from God. The truth that all people belong together as members of one family under God is seldom visible. Our sacred task is to reveal that truth in the reality of everyday life.

Why is that our task? Because God sent Christ to reconcile us with God and to give us the task of reconciling people with one another. As people reconcile with God through Christ we have been given the ministry of reconciliation” (see: 2 Corinthians 5:18). So whatever we do the main question is, Does it lead to reconciliation among people?

우리가 이땅에서 하느님의 자녀로써, 예수님의 형제 자매로써의 사명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화해” 입니다. 어디를 가던지 우리는 사람들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음을 발견합니다. 가족간에서도, 공동체 안에서도, 도시들과 나라들 그리고 대륙간에도 그 나누어짐이 있습니다. 이 모든 분열은 하느님과 우리들 사이의 떨어져 있음을 보여주는 비극적인 현상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한가족의 구성원으로 함께한다는 진실은 좀처럼 보기 힘듭니다. 우리가 해야할 거룩한 사명은그 진실을 매일매일의 삶가운데 실제로 보여주는데 있습니다.
왜 이것이 우리의 사명일까요?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셔서 하느님과 화해하도록 하셨고, 우리들 서로서로가 화해하도록 하는 사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과 화해 했듯이, 우리도 그 화해의 사역을 받은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5:18 참조) 따라서, 우리가 진정으로 해야 할 질문은 “ 우리가 하는일이 사람들간에 화해를 이루는 것인가?” 일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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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오신것을 기억하는 날에, “화해”를 이야기 하는것 보다 더 어울리는 주제는 없을것이라 봅니다.

Reconciliate 이라는 단어는, re 즉 다시 라는 뜻과 conciliate 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그리고 Conciliate 는 라틴어 concilare 에서 온 단어로 ‘모이다,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다, 친구삼다’ 라는 뜻을 갖고 있는 단어에서 왔습니다.

한영사전을 찾아보면 이 Conciliate 는 ‘달래다’ 로 나와있고, 영어사전에서도 비슷한 뜻으로 나와 있습니다.
어떻게 ‘모여서 친구삼는것’ 이 달래는것으로 바뀌었는지 몰라도 화해는 분명히 한쪽이 다른 한쪽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행위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것은, 상처를 준 쪽은 분명히 우리입니다. 상처를 받으실 분도 아니시지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상처를 주신 분은 아닙니다. 사실은 우리가 우리에게 상처를 준것이지요.
그런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화해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다시 친구삼으시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 다시 친구삼기를 위해서 하나뿐인 자식을 죽이십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 죽으러 온 아기의 오심을 기뻐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지도 않았는데 재산의 반을 떼어서 집을 떠난 아들입니다. 그리고 그 재산을 다 사용하고, 인간 이하의 굴욕적인 삶을 살다가 혹 머슴으로라도 살아 볼까 해서 아버지 집에 돌아온 아들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양팔 벌려 그 아들을 아무 조건없이! 맞으시고 잔치를 베푸십니다.

세상에 이런 화해의 제스쳐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화해가 아니라,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해야 할 질문은,
“우리가 하는일이 사랑인가?” 이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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