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6일 Returning to God’s ever-present love

We often confuse unconditional love with unconditional approval. God loves us without conditions but does not approve of every human behavior. God doesn’t approve of betrayal, violence, hatred, suspicion, and all other expressions of evil, because they all contradict the love God wants to instill in the human heart. Evil is the absence of God’s love. Evil does not belong to God.

God’s unconditional love means that God continues to love us even when we say or think evil things. God continues to wait for us as a loving parent waits for the return of a lost child. It is important for us to hold on to the truth that God never gives up loving us even when God is saddened by what we do. That truth will help us to return to God’s ever-present love.

우리는 종종 조건없는 사랑을 조건 없는 ‘허락’으로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십니다. 하지만 모든 행동들을 허락하시지는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배신, 폭력, 미움, 의심 그리고 다른 기타 악의 표현들을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것이 하느님께서 인간의 마음에 스며들게 하시려는 그 사랑과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악은 하느님의 사랑이 없는것 입니다. 악은 하느님에게서 찾아 볼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조건없는 사랑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우리가 악에 관련된 것들을 말하거나 생각하더라도 계속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잃어버린 자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랑 가득한 부모의 마음처럼, 우리를 계속해서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하는 행동들 때문에 하느님께서 슬퍼하신다 하더라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것을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진리를 붙잡고 있는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 진리가 우리를 하느님의 언제나 한결같으신 사랑으로 돌아가게 도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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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에 신부님께서 카톡을 통해서 천사와 싸우는 야곱의 그림과 함께 참 자아를 찾는것에 대한 글을 나누시었습니다.
이 장면에서 야곱은 ‘이스라엘’ 이라는 새 이름을 얻지요. 그리고 그 이름은 오늘날까지 유대인들의 나라의 이름이 됩니다. 즉 야곱은 유대인들 본인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야곱의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가 신약에서도 나옵니다.
바로, 주께서 해주신 그 유명한 ‘탕자의 이야기’ 입니다.

야곱의 이야기와 탕자의 이야기는 비슷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우선, 아버지와 두 아들이 나온다는 점이 같습니다. 그리고 작은아들은 가족을 떠나 멀리 떠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 불경스러운 방법이었습니다. 야곱은 아버지를 속여 축복을 받고, 탕자이야기의 작은아들은 아버지가 죽어야 받을수 있는 재산을 달라고 요구해서 받아 갑니다.
두 아들 모두 급히 집을 떠나고, 큰아들은 작은아들이 돌아올때 까지 이야기에서 등장하지 않습니다. 집을 떠난 야곱과 탕자는 타지에서 그렇게 평탄하지 않은 대접을 받습니다. 이삭과 탕자 이야기의 아버지는 작은 아들이 돌아올때 비슷한 방법으로 그를 맞이 합니다. 그리고 두 이야기에서 큰형들은 모두 동생의 돌아옴에 분노 합니다. 그리고 야곱과 에서가 그리고 작은아들과 큰 아들이 진정한 화해를 했는지는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물론 이 두이야기에서 다른점도 많이 있지만( 예를 들어 야곱은 재산이 많은 상태에서 돌아왔고, 탕자이야기의 작은 아들은 모든것을 잃고 돌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탕자의 비유를 말씀하실때 야곱의 이야기를 떠오르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야곱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이야기, 즉 그들 스스로의 이야기 였을테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듣고 바리새파 같은 사람들은 그렇게 편하지는 않았을것 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스라엘’ 은 분명히 본인들을 이야기 하고 있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리켜 형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계십니다.

‘탕자의 귀환’ 에서 아버지는 시종을 풀거나 해서 작은아들을 찾아 나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죽은것이나 다름없이 대했던 그 아들을,
기/다/리/셨/습/니/ 다.

 

One Comment

  1. For further reflection…

    “But while he was still a long way off, his father saw him and was filled with compassion for him; he ran to his son, threw his arms around him and kissed him.” – Luke 15: 20
    마침내 그는 거기를 떠나 자기 아버지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멀리서 본 아버지는 측은한 생각이 들어 달려가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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