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8일 From blaming to forgiving

 

Our most painful suffering often comes from those who love us and those we love. The relationships between husband and wife, parents and children, brothers and sisters, teachers and students, pastors and parishioners – these are where our deepest wounds occur. Even late in life, yes, even after those who wounded us have long since died, we might still need help to sort out what happened in these relationships.

The great temptation is to keep blaming those who were closest to us for our present, condition saying: “You made me who I am now, and I hate who I am.” The great challenge is to acknowledge our hurts and claim our true selves as being more than the result of what other people do to us. Only when we can claim our God-made selves as the true source of our being will we be free to forgive those who have wounded us.

우리가 경험하는 가장 커다란 아픔은 종종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옵니다. 부부,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목사와 성도.. 이런 관계 사이에서 가장 깊은 상처가 발생하지요. 심지어는 말년에, 그렇습니다, 어떨때는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이세상을 떠난지 오래되었음에도, 이 관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리를 하기위해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가장 쉽게 빠질수 있는 유혹은,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람에 화살을 돌리는 거이지요. “ 당신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어. 그리고 지금의 내가 너무 싫어!”
이에대해 가장 힘든 도전은, 우리의 상처를 인지하고,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한 일의 결과 이상의 것인 우리 스스로의 진정한 모습을 찾는것입니다. 오직 우리가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습을 우리 존재의 진정한 뿌리임을 주장할수 있을때, 우리에게 상처주었던 사람들을 용서할수있는 자유인이 되는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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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 세미나에서 강조했던 ABC 중에 “C” 를 기억하시나요?
바로 “Control” 입니다.
아무리 우리 몸에 달려있는 팔 다리라 할 지라도, 우리가 그 움직임을 조정하지 못하면, 그것은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이것은 비단 몸의 움직임에만 그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 때문에 우리가 계속 괴로워 하고 있으며, 이에는 이 그리고 눈에는 눈을 외치고 있으면, 결국 그 사람이 우리를 계속 Control 하고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상처는 아픕니다. 그리고 그 상처가 완전히 아물기도 아주 힘들지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고, 지금의 나에게는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라고 하면 내가 나를 Control 하는 것이 됩니다.

어릴적에 엄한 아버지 밑에서 무수하게 맞고 자란 아이는 자라서도 아버지를 연상하게 끔 하는 어른 남자를 보면 심장이 벌렁벌렁 뛰고, 긴장을 하게 됩니다.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런 자리를 피하게 되기도 하지요.
안타깝게도 이런 생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나아질수는 있지만, 완전히 사라지기는 힘이 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남자는 나의 아버지가 아니고, 나를 때리지 않을것이다” 를 되새기며 그 상황을 회피하지 않으면, 조금씩 조금씩 되새길 필요 없이 그것이 현실임을, 과거가 반복되지 않음을, 그 어린아이는 이제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는것을 인지하고 감정을 Control 하게 될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그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고, 왜 그렇게 하셨는지가 보이면서 용서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과정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아주 아주 어렵습니다.
그래서 종종 포기하기도 하고, 언제나 사용하던 ‘도망가기’ 전법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치료약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사랑입니다.
오직 사랑만이 두려움을 물리칠수 있습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 냅니다.” (요한 1서 4:18)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을 마음에 품은 사람은 사랑을 할 수 있고, 또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품은 남편과 아내
하느님의 마음을 품은 부모와 자녀
하느님의 마음을 품은 선생님과 제자
하느님의 마음을 품은 성직자와 성도들.
하느님의 마음을 품은 친구와 직장동료….

우리가 만나기 원하고, 또 우리가 되기 원하는 관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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