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월 23일 The quality of Life

It is very hard to accept an early death. When friends die who are seventy, eighty, or ninety years old, we may be in deep grief and miss them very much, but we are grateful that they had long lives. But when a teenager, a young adult, or a person at the height of his or her career dies, we feel a protest rising from our hearts: “Why? Why so soon? Why so young? It is unfair.”

But far more important than our quantity of years is the quality of our lives. Jesus died young. St. Francis died young. St. Thérèse of Lisieux died young, Martin Luther King, Jr., died young. We do not know how long we will live, but this not knowing calls us to live every day, every week, every year of our lives to its fullest potential.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것을 받아 들이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7-80대 혹 90대의 친지가 세상을 떠나면, 깊은 슬픔에 빠지고 그들을 많이 그리워 할것은 분명합니다만, 동시에 장수한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도 함께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10대, 또는 청년, 또는 인생의 절정을 보내고 있는 사람의 갑작스런 죽음은 마음속의 한가닥 분노를 일으키지요. “왜? 왜 이렇게 일찍? 왜 이렇게 젊을때 죽어야만 하지? 공평하지 않아”

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사는가 보다는, ‘어떻게’ 사는가가 훨씬 중요합니다. 주께서도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습니다. 성 프란시스도, 성 소화 데레사 그리고 마틴 루터 킹 목사도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살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얼마나 살지 모른다는 이 사실이, 우리에게 허락된 하루하루, 매주 그리고 매년을 최선을 다해, 그 가치에 걸맞는 삶을 위해 노력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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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는 33세. 성프란시스는 44세에, 소화 데레사는 24세에 그리고 킹목사는 39 세에 그 마지막 통로를 통과했습니다. 45세인 저와 비교해 보았을때, 저는 각각 12년, 1년, 21년 그리고 6년 더 살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그들보다 더 오래 살았다고 그들보다 더 큰 영향을 세상에 끼쳤다고는 당연히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죽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짜피 우리들은 토기장이의 토기일뿐.

아직도 숨이 붙어 있는것을 보면, 분명히 이 세상에서 주께서 보내신 목적, 즉 해야 할 일이 있는것이라 생각되어 집니다.

또 뚝배기는 된장찌개를 끓이고, 양은냄비는 라면을 끓이면 제격이듯이, 그저 제가 해야할 사명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주어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게 제가 신경써야 할 부분인것 같고요.

결국, 우리 모두, 성인이건 범인이건, 주의 영광을 위한 삶을 위해, 그 열매를 위해 사는것이니까요.

“바로 그 때 어떤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빌라도가 희생물을 드리던 갈릴래아 사람들을 학살하여 그 흘린 피가 제물에 물들었다는 이야기를 일러드렸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죄가 많아서 그런 변을 당한 줄 아느냐?

아니다. 잘 들어라.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또 실로암 탑이 무너질 때 깔려 죽은 열여덟 사람은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죄가 많은 사람들인 줄 아느냐?

아니다. 잘 들어라.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놓았다. 그 나무에 열매가 열렸나 하고 가보았지만 열매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포도원지기에게 ‘내가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따볼까 하고 벌써 삼 년째나 여기 왔으나 열매가 달린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아예 잘라버려라. 쓸데없이 땅만 썩일 필요가 어디 있겠느냐?’ 하였다. 그러자 포도원지기는 ‘주인님, 이 나무를 금년 한 해만 더 그냥 두십시오. 그 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다음 철에 열매를 맺을지도 모릅니다. 만일 그 때 가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베어버리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루가복음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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