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월 27일 Being ready to Die

Death often happens suddenly. A car accident, a plane crash, a fatal fight, a war, a flood, and so on. When we feel healthy and full of energy, we do not think much about our deaths. Still, death might come very unexpectedly.

How can we be prepared to die? By not having any unfinished relational business. The question is: Have I forgiven those who have hurt me and asked forgiveness from those I have hurt? When I feel at peace with all the people I live with, my death might cause great grief, but it will not cause guilt or anger.

When we are ready to die at any moment, we also are ready to live at any moment.

죽음은 갑자기 찾아오기도 합니다. 자동차 사고, 비행기 사고, 끔찍한 싸움, 전쟁, 홍수 등등..…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칠때,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아주 뜻밖에 갑자기 찾아올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죽음을 어떻게 준비할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매듭지어 지지 않은 관계를 청산함으로 가능합니다. 다시 말해서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해 주었는가? 또는 내가 상처를 준 사람에게 용서를 구했는가? 같은 질문이 필요한것이죠. 내 삶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과 화평할수 있을때, 나의 죽음은 설령 커다란 슬픔을 가져올지 몰라도, 죄책감이나 분노를 유발하지는 않을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아무때라도 죽을 준비가 되어있을때, 우리는 또한 항시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것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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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을 돌아보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삶을 더 알차고 의미있게 만들어 준다는 역설아닌 역설을 이야기 하고 계십니다.

인터넷에서 찾은 이 글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노인 병간호를 하는 한 호주 여성이 최근에 의미 있는 일을 했습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감지한 양로원 노인들이 이 아가씨에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후회되는 일들을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다들 스스로 이야기한 걸 보면 아마도 아가씨가 마음이 따뜻하고 사람을 편하게 하는 성격을 가졌던가 봅니다. 이 아가씨는 생의 종착지에 다다른 노인들의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매번 똑같은 내용이 반복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걸 추려내니 죽음 앞에서 가장 많이 하는 다섯 가지 후회로 압축이 되더랍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1. 난 나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했고 따라서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사는 대신 내 주위 사람들이 원하는 (그들에게 보이기 위한) 삶을 살았다.

2. 그렇게까지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었다. (젊어서 그토록 열심히 일하신 우리 아버지조차 내게 하신 말이다.) 대신 가족과 시간을 더 많이 보냈어야 했다. 어느 날 돌아보니 애들은 이미 다 커버렸고 배우자와의 관계도 서먹해졌다.

3. 내 감정을 주위에 솔직하게 표현하며 살지 못했다. 내 속을 터놓을 용기가 없어서 순간순간의 감정을 꾹꾹 누르며 살았다.

4. 친구들과 연락하며 살았어야 했다. 다들 죽기 전에 그러더라고. “친구 아무개를 한 번 봤으면…”

5. 행복은 결국 내 선택이었다.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는데 겁이 나서 변화를 선택하지 못했고, 튀면 안 된다고 생각해 남들과 똑같은 일상을 반복했다.

끝으로 “돈을 더 벌었어야 했는데, 궁궐 같은 집에서 한번 살아봤더라면, 고급 차 한번 못 타 봤네, 애들을 더 엄하게 키웠어야 했다” 라고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부연입니다.

솔직히 새로울 것도 없는 내용입니다. 몰라서 못 하는 것보다 알면서도 안 하는 것에 생애 대부분의 문제가 걸리듯이 죽음 앞에서 직면하는 이 다섯 가지 명제 또한 그러합니다.

지인은 ‘균질화된 삶, 균질화된 후회’라는 말로 ‘지금처럼 이렇게 사는 끝이야 다들 뻔한 것 아니겠냐’는 뜻을 대신했습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 아니라 실은 ‘그때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점이 섬뜩합니다. 그래서 더욱 절망스럽습니다. 다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것’이라는 말만이 선연히 떠오를 뿐입니다.

영혼을 야금야금 떼어 팔면서 욕망을 충족시켜 온 생의 막다른 길, 후미진 골목 끝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섯 가지 후회’와 맞닥뜨리게 된다는 ‘통한의 증언’은 악마와의 거래로 결국 생 전체를 집어 삼키우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연상케 합니다.

파우스트와 악마의 계약 기간은, 나와 나의 욕망이 맺은 계약 기간, 즉 삶의 전 기간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생의 끝에서 통째로 악마 메피스토의 소유가 되어 버릴 불쌍한 내 영혼의 탄식이 들리기 때문입니다.

돈을 더 버느라고, 궁궐 같은 집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어서, 고급 차를 타고 남들 앞에서 폼을 잡고, 자식을 일류 대학에 보내는 것으로 대리 만족을 얻고 싶어서 일평생 발버둥을 쳤으니까요.

북 아일랜드 출신 기독교 변증가이자 소설가 시 에스 루이스(C.S Lewis ;1898-1963)는 고독과 분노, 증오, 질시, 참을 수 없는 갈망, 관계 단절로 자기 고집과 집착에 갇히는 것, 각각의 사람이 마음 문을 닫고 자기만의 동굴을 만드는 것, 그래서 서로에게서 멀어지고 아무도 타인에게 기대지 않고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그래서 공동체가 죽어가는 것, 이것이 곧 지옥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죽기도 전에 이미 지옥에서 살고 있을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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