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2일 The created order as Sacrament

When God took on flesh in Jesus Christ, the uncreated and the created, the eternal and the temporal, the divine and the human became united. This unity meant that all that is mortal now points to the immortal, all that is finite now points to the infinite. In and through Jesus all creation has become like a splendid veil, through which the face of God is revealed to us.

This is called the sacramental quality of the created order. All that is is sacred because all that is speaks of God’s redeeming love. Seas and winds, mountains and trees, sun, moon, and stars, and all the animals and people have become sacred windows offering us glimpses of God.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육신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보내셨을 때, 창조된 것과 창조되지 않은 것, 영원한 것과 일시적인 것, 신성한 것과 인간적인 것, 이 상반된 것들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하나됨은 죽어 없어질 모든 것이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며, 한계가 있는 것들이 무한함을 향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서 모든 피조물들은 놀라운 면사포가 되어서 그것을 통해 하느님의 얼굴이 우리에게 보여지게 됩니다.

이것을 창조질서의 성스러움이라 부를수 있겠습니다. 모든것이 하느님의 구원의 사랑을 이야기 하기에 성스럽게 구별됩니다. 바다, 바람, 산들, 나무들, 해와 달 그리고 별들, 또한 모든 동물들과 사람들은 하느님의 모습을 살짝 보여주는 성스러운 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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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 이야기를 살펴 보면 반복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라는 것입니다.

빛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고, 물을 한곳으로 모아 땅을 보이시고도 좋았다 하셨으며 식물들과 동물들을 만드시고 나서 보시기에 참 좋으셨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만드시고 역시 좋다고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엿새동안 하신 일중에 보시기에 좋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와서 그 본래의 모습이 퇴색되고 보시기에 좋지 않은 것들이 등장했지만, 그것들 마져도 원래는 보시기에 좋았던 것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머리가 자라면서, 특히 종교가 또 교회가 사람들의 입김이 강해지면서, 그 좋은 것을 구별하는 모습이 생기게 됩니다. 하느님은 다 좋다고 하셨는데…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 이렇게 나누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을 더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원래는 모두 좋았던 것을, 그 원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이유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고, 이것 이것만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이다 라고 잘못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써 하느님을 반쪽의 하느님으로 만들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되지요.

우물가의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그의 모습을 드러내셨을 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의 복음을 보이셨는데, 그 여인의 첫번째 질문은 기가막히게도 “어디서 예배를 드려야 옳겠습니까?” 라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바로 옆에 계신데도 말이죠.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술을 마셔야 하는가 마시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해 토론을 합니다.

교회에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와도 되는가 안되는가에 대해 왈가왈부 합니다.

이혼한 사람은 성찬식에 참여를 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해서 말이 오고 갑니다.

처음 지으실때 그 보기 좋았던 모습으로 다시 모든것을 회복시키고 모으시기 위해 주님은 오셨습니다.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으시기 위해.

“늑대가 새끼 양과 어울리고 표범이 숫염소와 함께 뒹굴며 새끼 사자와 송아지가 함게 풀을 뜯으리니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암소와 곰이 친구가 되어 그 새끼들이 함께 뒹굴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리라. 젖먹이가 살무사의 굴에서 장난하고 젖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겁없이 손을 넣으리라. 나의 거룩한 산 어디를 가나 서로 해치거나 죽이는 일이 다시는 없으리라. 바다에 물이 넘실거리듯 땅에는 야훼를 아는 지식이 차고 넘치리라” (이사야 11: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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