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9일 Baptism, a call to commitment

 

Baptism as a way to the freedom of the children of God and as a way to a life in community calls for a personal commitment. There is nothing magical or automatic about this sacrament. Having water poured over us while someone says, “I baptise you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the Son and the Holy Spirit,” has lasting significance when we are willing to claim and reclaim in all possible ways the spiritual truth of who we are as baptised people.

In this sense baptism is a call to parents of baptised children and to the baptised themselves to choose constantly for the light in the midst of a dark world and for life in the midst of a death-harbouring society.

하느님의 자녀로써 자유를 누릴수 있고, 하느님의 공동체 안에서의 삶을 가질수 있는 세례는 개개인의 언약을 요구합니다. 이 예식에 어떤 마술적인 신비함도 또 자동으로 주어지는 것도 없습니다. 누군가가 “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라고 말을 하면서 물을 붓는 행위는 우리가 세례를 받은 자로써의 영적인 본 모습을 계속 갱신하겠다는 의지가 있을 때에만 그 의미가 있습니다.
이러므로, 세례란 유아세례를 받은 아이의 부모에게 그리고 세례를 직접 받은 사람에게 이 어두운 세상에서 빛을, 또 죽음이 드리워져 있는 사회에서 생명을 지속적으로 선택하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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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묵상에서 이 ‘Commitment’ 에 대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상황이 바뀌고, 확실하게 보이는것이 없다 하더라도 지켜나가는 약속인 Commitment. 그러면서 세례받은 자로써의 자세를 돌이켜 보았습니다.

그런데, 약속이라는 것이, 대개의 경우 본인 말고 다른 상대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이 세례의 commitment 에는 하느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우리가 변하고, 약해지고, 하느님께로 도망을 가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향하신 사랑의 약속은 변하지 않으신다는 commitment 가 그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과 맺은 언약을 잘 보여주는 장면중 하나는 창세기 15장에 나와있습니다.
아브람에게 나타난 하느님께서 “무서워 말아라. 아브람아 나는 방패가 되어 너를 지켜주며, 매우 큰 상을 너에게 내리리라” 하시며 후에 암소, 암염소, 숫양 그리고 비둘기들을 바칠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밤에 연기뿜는 가마가 나타나고 활활 타는 횃불이 나타나 그 쪼개 놓은 짐승들 사이로 지나가면서 언약은 맺어 집니다.

혹자는 이 사건을 두고, 일방적인 언약맺음이라 하기도 합니다. 즉, 쪼개놓은 짐승위로 지나감은 곧 만일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경우 이렇게 쪼개짐을 당하는것 같은 응당한 대우를 받겠다는 것인데, ‘이것이것을 하겠다’ 하는 것도 하느님쪽에서만 나오고 ( 사실 아브람이 땅을 차지하리라는 말을 믿지 못해서 증거를 보여달라 하면서 벌어진 일입니다) 그리고 쪼개진 동물들을 지나간 것도 하느님뿐이었습니다.

이만한 불공정한 계약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은혜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세례는 정말 든든한 계약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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